18구간 댓재 - 백봉령
백두대간 구간
일시 : 2003. 11.22~3
날씨 : 맑음
교통 : 버스이용
일행 : 헌중 외 산악회원
구간 : 댓재 - 두타산 - 청옥산 - 고적대 - 이기령 - 상월산 - 백봉령 : 29.1킬로
시간 : 03:00 - 13:25분(10시간 25분)
비용 :산악회비 33,000원 귤 2,000원 음료수 1,400원 커피 600원 계란 1,000원
라면 2,000원
총계 : 40,000원
토요일 무박 대간 팀으로 댓재 - 백봉령 구간을 가기로 한다.
15일부터 산불 방지 기간이라 혼자서는 갈 수가 없어서 택한 방편이다.
2시 50분쯤 버스가 삼척시 미로면과 하장면을 연결하는 424번 지방도로인 댓재에 도착한다.
바같 바람은 싸늘하다.
모처럼의 추위다.
산바람은 더욱 더 차리라. 댓재에는 두타산과 청옥산의 등산 안내도가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버스도 하루에 3번 다닌다.
09:00 14:50 18:50
댓재에는 댓재공원이 있어서 야영터가 좋다.
야간 산행 준비를 마치고 03:00시에 출발한다.
산행은 댓재(810m) 정상에서 두타산 산신각 우측으로 진입하여 마루금을 밟는다.
노송지대를 지나 올라서면 970m봉이다.
970m봉에서 대간길은 서쪽(좌측)으로 휘어져 내려서는데 가파른 내리막이라 조심하여야 하는곳이다.
안부까지는 잡목 숲이고, 안부부터는 넓은 등산로이다.
934m봉을 우측으로 트래버스하여 오르면 1,031m봉이다.
왼쪽에서 불어 오는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댓재에서 1,031m봉까지는 이정표가 500m 간격으로 세워져 있어 흔히 말하는 고속도로라고 한다.
1,031m봉에서 30분정도 가면 삼거리이다.
좌측으로는 번천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대간길은 직진하여야 한다.
삼거리를 출발하여 30분정도 오르면 1,243m봉이다.
1,243m봉을 우측 9부 능선으로 트래버스하여 우측으로 오르면 두타산 정상(1353m, 5:30분)이다.
두타란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깨끗하게 불도를 닦는 수행이라는 말이란다.
정상에는 큰 돌로 세운 정상석과 묘1기와 이정표가 서있다.
자손이 귀한 집에서 명산에 묘를 쓰면 번창한다는 속설이 있어서인지 정상에 묘가 있다.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오른쪽길.
오늘은 대간길이라서 무릉계곡쪽으로 가지 않는다.
두타산 정상은 대체로 겨울에는 영서지방 특유의 폭설과 여름에는 바람과 비가 심해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날씨가 좋은 날이면 동해바다와 주변의 경관이 일품이리고 한다.
댓재 주변이 상습안개 지역이지만 대체로 두타산 정상까지 오면 구름은 발아래로 깔리게 된다.
사진도 찍고 깜깜한 하늘을 바라 보며 동해시의 야경을 감상한다.
두타산 정상에서 좌측(북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가파른 길을 내려서서 긴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다시 올라 가야할 길이 그만큼 길어지는데 하고 걱정을 하고 갈림길이 없는 등산로를 따라 50분정도 가니 박달령(06:30)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하산하면 금강산만큼이나 아름답다는 무릉계곡으로 하산할 수 있다.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는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형성된골짜기로,
기암절벽과 천연림, 폭포와 맑은 물로 시인묵객과 수도고승들이 많이 찾아와 풍류를 읊고 노닐던 곳이다.
1977년에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된 곳으로,
무릉계란 이름은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
또는 조선조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金孝元)이 작명하였다고 하나 전설이 구구하여 뚜렷한 근거는 알 수 없다.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절경을 이루고 석장암동(石場岩洞)이라는 무릉반석(武陵盤石)은
1,500여 평이나 되는 화강암으로 된 너럭바위로서 기이함을 안겨주고,
암석에는 갖가지 기념명자(記念名字)가 음각되어 이채롭기 그지없다.
그 중 조선 선조 4년(1571년) 조선 4대 명필이요,
4선(四仙)의 한 사람인 봉래 양사언이 쓴 ‘武陵仙源(무릉선원), 中臺泉石(중대천석), 頭陀洞天(두타동천)’의 12자와
하행방서(下行傍書)로 된 ‘玉壺居士書(옥호거사서) 辛未仲春(신미중춘)’이란 석각은 관광객의 좋은 기념촬영터가 되고 있다.
한편 무릉계곡의 여러 명소 이름은 선조 때 이곳 부사로 있던 김효원이 지은 것이라 하며,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명승 자장조사(慈藏祖師)가 창건한 삼화사(三和寺)가 있고,
이곳에 안치되어 있는 철불(지정문화재 제112호)에 새겨진 명문은
최근 학술발표에 의하면 국내 최대의 글자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디지틀조선일보}
박달령을 지나면서부터는 청옥산까지 완만한 오름길의 연속이며 도중에 너덜길을 지나쳐야한다.
20분정도를 가파르게 오르니 오늘의 최고봉, 청옥산 정상에 도착한다.
동해에 안개가 끼여 있어서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는 보지 못했다.
청옥산(6:50분,1,403.7m)정상은 평평한 헬기장이 있어서 휴식을 취하거나
백두대간을 연이어 하는 종주자들은 야영지로 적당한 곳이다.
식수는 정상에서 남쪽사면으로 50m 정도 내려가면 샘이 있다.
왠만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청옥산 정상에서 중봉리쪽으로 1분 거리에 두어 자 높이 의 돌비석이 있다.
이 돌비석은 1950년 어떤 사람이 산기도 를 하다가 산신령께
신침을 전수받고 하산하여 한의 원으로 재산이 많이 늘었다고,
그 자식들이 고마움의 뜻으 로 1982년 기념비를 세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만약 이 비 석이 보이면 종주로가 아님을 깨닫고 뒤로 나와 청옥산 정상 헬기장에서 북동쪽 종주길 표지기를 찾아야 한다.
청옥산에서는 우측길을 따라야 대간길이다.
청옥산 정상의 헬기장에서 북동쪽으로 달려있는 대간종주 표지기를 확인하고
들어서서 30여분의 내림길을 가니 연칠성령에 도착했다.
연칠성령에서 1시간이면 사원터로 하산하고, 대피소이고, 2시간 더 내려가면 무릉계곡이다.
돌탑이 쌓여 있는 연칠성렬에서 아침을 먹고 뾰쪽하고 인상적인 바위로 돼어 있는 고적대를 바라 본다.
연칠성령을 지나 고적대를 오르려면 가파른 암릉으로 되어 있지만 오르는데는 힘들거나 위험하지는 않다.
고적대 정상(1354m, 7:55분)에서 왼쪽으로는 중봉산이 보이고 수많은 산들이 도열해 있는것 같다.
우측길로 대간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약 10m거리에 산림보호경고판이 설치되어 있으므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왼쪽 사면은 완만한데 우측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무릉계곡이 한눈에 들어 오고 시원한 동해 바다가 보인다.
오늘 최종 목적지 백봉령의 맞은편 산, 자병산이 이제야 보인다.
산을 깍아 시멘트를 만드느라 멀리서도 알 수가 있었다.
근데 너무 멀리 있다 휴~~~ 고적대부터는 큰 오름길 없이 거의 평탄한 내림길이다.
고적대를 지나 약 25분정도 진행하니 우측으로 사원터로 내려서는 이정표가 있고 초입이 훤하게 드러나 있다.
다시 한참을 오르니 갈미봉(1260m, 8:27분)이다.
잠시 휴식뒤 꾸불 꾸불 이어진 길을 따라서 가도 가도 이기령이 안 나온다.
송전 철탑이 보이는 데도 길은 낮은 구릉까지 계속 이어져 있고 1시간 30분만에 이기령(10:00)에 도착했다.
임도를 만나고 남은 간식거리로 배를 채우고 이기령 철탑 밑 등산로로 접어들어,
서서히 고도를 높여 상월산(970.3, 10:45)에 오른다.
휄기장을 지나고 다시 급하게 내려 섰다가 다시 오르면 980m이다.
계곡이 깊은 걸 보니 또 엄청 내려가는 모양이다.
큰 소나무가 한 그루있고 절벽길을 따라서 다시 고도를 내리면 숙영하기 좋은 원방재(11:07)인데,
임도를 건너면 물이 있고 백봉령까진 2시간 30분 걸린다는 목원대학교 표언복님의 글이 보인다.
원방재는 왼쪽 정선군 임계면 방향의 임도로 내려서는 길과
오른쪽 동해시 신흥동으로 내려서는 길이 완연하게 나타난다.
신흥동 방향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고 한다.
물의 양을 체크하고 원방재를 지나 수없이 많은 표지기가 붙어 있는 정면 대간길로 다시 서서히 고도를 올린다.
862봉에서 대간길은 동으로 휘어지며 8시간 넘게 계속된 산행은 1,022봉 정상을 향하는 발걸음을 무디게 만든다.
잡목길을 따라서 열심히 오르니 헬기장으로 조성된 1022봉(11:50)이다.
북쪽, 우측길로 향하여 대간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987봉(12:30)이다.
작으마한 봉우리들을 계속 넘으니 42번 국도가 포장되면서 백봉령은 자병산 아래가 된다.
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든 후 5분정도 거리에 832봉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오른쪽 바로 아래에서 차량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지척에 들린다.
42번 국도가 보이고 깍여진 자병산이 보인다.
핼기장을 지나니 이동통신 송전탑이 보이고 백봉령(780M,13:25)이다.
백봉령은 행정구역상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의 경계이지만
실제로는 동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동해시에 훨씬 가깝다.
정선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는 "아리랑의 고장 정선"임을 알리는 대형 표석이 서 있기도 하다.
땀에 젖은 피곤한 몸뚱아리는 겨울날씨에 몸을 부시시 떨리게 한다.
길우측에는 간이 매점이 있고 라면과 계란으로 요기를 한다.
자병산은 흔적없이 무너져 내리고 공사 현장만이 보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시멘트를 생산하기 위해서 없어진 자병산.
이젠 다시는 자병산을 올랐다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리라.
※ 白茯嶺(780m) : 옥계면 남양리와 동해시 신흥동,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동목리 사이에 길게 이어진 령이다.
옛부터 이곳에서 한약재로 쓰는 백복이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복은 복령(茯笭)가운데 특히 백복(白茯, 흰 분말)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한다.
고개마루 바로밑에 산신각이 있다. 정선군이 세운 자연석으로 된 홍보물과 이정표도 있다.
♤ 정선아리랑에서는 "백복령"을 넘어 강릉, 삼척으로 소금사러 간 낭군의 무사안녕을 비는 노래가 있다.
이 고개는 옛날의 생계령과 함께 정선과 삼척을 잇는 중요한 물류의 중심 고개였을 것이다.